[가톨릭평화신문]“선조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 살 것” 다짐(2014년 6월 18일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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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 살 것” 다짐
근·현대 신앙의 증인으로 선정된 박영옥 안드레아의 자녀 박종순·종희씨 자매
입력 2014.06.18.05:09 수정 2014.06.18.05:09
하느님의 종 박영옥의 넷째 딸 박종희(왼쪽)씨가 큰 언니 종순씨에게 순교기념비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오세택 기자
“예수님과 같이 죽는다면 큰 영광이 될 것이다. 나는 끝까지 주님만 믿고 따르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치명할 것도 각오한다.…”
박종순(막달레나, 81, 수원 송탄본당)ㆍ종희(마르타, 70, 수원 송서본당) 자매는 6ㆍ25전쟁이 터진 그해 여름을 잊지 못한다. 그해 7월 말, 좌익 보안대 충남 당진 신평면 분주소(파출소)에 끌려간 아버지(박영옥 안드레아, 1914∼1950)가 초주검이 돼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매를 많이 맞았는지 온몸이 새카맣게 멍이 들어 걷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병석의 아버지는 “고문과 매질을 당할 때에 십자가 수난을 받으시는 예수님만 생각하며 참고 견뎠다”고 했다. 며칠 뒤 몸을 추스르고는 합덕성당에 가서 페랭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한 뒤 “기분이 천당에 갔다 온 것 같다”며 기뻐했다.
그러던 아버지는 그해 8월 12일 다시 연행돼 신평면 분주소를 거쳐 당진 내무서로 끌려가 수복 전날인 9월 27일 당진 읍내리 공동묘지에서 총살됐다. 그날 그곳에서 피살된 종교인과 애국지사는 모두 68명이었다. 합덕본당 교리교사로, 신평 매산리공소 부회장으로, 대한반공청년단 신평면 부단장으로 열심히 살던 아버지는 그렇게 순교의 길을 걸었다. 37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1867년 순교한 아버지의 고조부 박 안드레아(?∼1867) 회장에 이어 집안 두 번째 순교자였다.
그 후로 6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가족들에게는 남편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사무친 세월이었다. 물론 고인에 대한 기도는 가족 사이에서 늘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넷째 동생 종희씨가 지난해 7월 평화방송TV 자막에서 우연히 아버지의 이름을 봤다. 아버지와 6대조 할아버지가 근ㆍ현대 신앙의 증인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에 포함됐다는 소식이었다. 하느님의 종 선정 발표 5개월 만에 뒤늦게 알게 된 그는 이 기쁜 소식을 생존한 네 자매에 바로 전했다. 종희씨의 기쁨이 가장 컸다. 그간 국립중앙도서관과 내포교회사연구소, 생가, 순교지 등을 돌며 아버지의 순교 행적 증거를 수집하고, 아버지의 삶과 신앙을 알리는 데 애써온 것도 이유였다.
시복 추진 소식을 접한 박종순씨는 “생전에 열심히 사셨으니까 그 덕분에 하느님의 종이 되셨다고 믿고 있다”며 “장차 복자품, 더 멀리는 성인품에 오르실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미사에 참석하며 기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이들 자매와 가족들은 “조선왕조 치하 2차 시복 대상자와 근ㆍ현대 신앙의 증인들의 시복을 위해 모두 열심히 기도를 바치고 있다”며 “하느님의 종이 되신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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