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현대 순교록 '한국전쟁 순교자들을 찾아'] 1.아직 기록되지 않은 순교록(2007년 6월 10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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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순교록 '한국전쟁 순교자들을 찾아'] 1.아직 기록되지 않은 순교록
발행일2007-06-10 [제2553호]
“순교자 생애·신앙자료 발굴에 관심을”
한국교회 현양 움직임 대부분 계획단계 머물러
왜관수도원 36명 시복시성 추진으로 관심 확산
대전교구 순교자 연구작업 전개…자료집 발간
전문-돌아오는 6월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 57주년이다.포화가 멎은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렸던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교회 또한 한국전쟁을 겪으며 큰 상처를 입었다. 성직.수도자가 납치되거나 죽었고 신앙을 드러내며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은 평신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얼마 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한국전쟁 전후 순교한 36명의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하며 한국전쟁 순교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초기교회 박해기에 못지않은 수많은 신앙인들이 희생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적과 자료 수집 등 종합적인 연구 작업이 이제껏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이다.
본지는 6월 한 달간 한국교회 내에서 진행됐거나 현재 진행 중인 한국전쟁 순교자 현양사업을 돌아보고, 순교자들의 얼이 서린 현장을 찾아 박해 당시의 모습을 되짚어본다.
북한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희생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 대한 범 교회 차원의 연구가 절실하다는 목소리는 줄곧 계속돼 왔다. 이에 부응해 성직자나 수도자를 중심으로 한 자료수집과 연구도 이뤄져 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는 한국전쟁 중 희생된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생 수를 150명으로 집계하고 있으며 주교회의 차원에서 1990년 대한적십자사에 생사확인을 요청한 명단에도 118명이 기록돼 있다. 주교회의가 대희년을 앞두고 1998년과 1999년 교황청에 제출한 ‘한국교회 20세기 순교록’에는 한국전쟁 순교자 182명이 포함돼 있다.
현양사업의 구체적 행보
하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명단은 대부분 성직자와 수도자에 국한돼 있으며 순교자료도 불충분한 상태다. 또 명단만 제출되거나 확인했을 뿐 후속 연구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한국전쟁 순교자에 대한 현양사업은 답보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5월 10일 덕원 수도원 사제 등 ‘20세기 순교자’ 36명의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한 것은 한국전쟁 순교자 현양을 위한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행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는 덕원 수도원 소속 사제 및 수사 26명, 연길수도원 소속 사제 1명, 보이론 수도원 소속 사제 1명, 원산수녀원 수녀 및 헌신자 4명, 덕원 자치수도원구와 함흥교구 소속 사제 4명 등 총 36명이다.
가톨릭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으며 덕행의 실천에 탁월했고, 이 두 사실에 대한 목격자 혹은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경우를 고려해 선정됐다. 왜관 수도원은 시복시성을 위한 법적조치가 이뤄지는 동안 대상자들의 순교사실 확인 및 성덕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고 청원서 제출을 준비하게 된다.
순교자 연구 활기 기대
왜관 수도원의 이번 교령 반포는 한국교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수도원 뿐 아니라 교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제자리걸음을 걷던 한국전쟁 순교자 연구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는 기폭제일 뿐 아니라 순교자 연구를 준비 중인 타 교구에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편 대전교구의 한국전쟁 순교자 연구작업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2008년 교구 설정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교구사 발간에 들어간 대전교구는 특별히 교구 설정 직후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순교자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대전교구사연구소 김정환 신부는 지난 5월 열린 교구 사제연수에서 ‘한국전쟁과 현대의 순교자들’ 자료집을 배포하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자료집에는 한국전쟁 전후 교구 상황과 대응, 순교자 목록 뿐 아니라 공세리·목동·홍성·합덕·서산본당 등 전쟁 당시 박해가 극심했던 각 본당의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특히 자료집에는 최종수(요한), 이항진(토마스), 윤갑수(시몬), 백낙선(사도요한) 등 신앙을 증거 하다 순교한 평신도들의 행적이 현재 생존해 있는 목격자들의 증언과 본당사를 기초로 상세히 기술돼 있다. 대전교구는 교구사연구소의 자료수집과 연구 작업 외에도 매월 한 번씩 교구 주보에 ‘김정환 신부의 6.25 순교자 이야기’를 연재해 한국전쟁 순교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대전교구가 한국전쟁 순교자 연구에 나선 것은 잃어버린 역사였던 한국전쟁 당시 교회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순교자들의 정신을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교구 다음으로 많은 성직자(10명)가 순교했고 금강 이북 본당이 극심한 피해를 입은 대전교구가 이번 자료집 발간을 기초로 보다 적극적인 연구 작업에 나선다면 한국교회의 한국전쟁 순교자 연구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신앙증거 위해 목숨바쳐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의해 자행된 박해와 그로 인해 희생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자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알려진 기록과 증언을 통해 볼 때 매우 분명하다. 대전교구사 연구소 김정환 신부는 자료집 ‘한국전쟁과 현대의 순교자들’에서 ‘교회는 전쟁 초기부터 공산주의자들의 탄압대상이었고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한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각오하면서 이에 대응함으로써 현대의 순교자들이 탄생했다’며 ‘한국전쟁은 그 처참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초기부터 면면히 내려오던 순교정신을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밝히고 있다.
왜관 수도원이 이미 시복시성 추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에서 볼 수 있듯 한국전쟁 순교자들은 초기 박해기 순교자들과 마찬가지로 훗날 제3, 제4의 시복시성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미 한국교회는 수차례에 걸쳐 한국전쟁 순교자 조사 작업을 계획한 바 있다. 경향잡지가 1952년 교회의 수난역사를 편찬해 후세에 귀감을 삼고자 한국전쟁 수난사를 편찬하기 위해 교회 각 본당 신부들에게 조사보고서를 제출해 줄 것을 청했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1969년에는 한국평협이 순교자 현양사업 일환으로 한국전쟁 순교자 조사를 결의하고 주교회의 인준까지 받았지만 역시 무위로 끝나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에도 교회 차원의 한국전쟁 순교자 현양 움직임은 있었지만 대부분 계획 단계에서 머무르는 모습을 보였다.
왜관 수도원과 대전교구의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과 연구 활동으로 인해 한국전쟁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발 맞춰 범 교회가 역량을 모아 순교자들의 생애와 신앙에 대한 자료를 발굴하고 확보하는데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사의 빈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이제 교회 전체가 나설 때다.
사진설명
▶서울 평협은 2005년 6월 23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순교자들을 위해 특별기도회를 가졌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형우 아빠스가 5월 10일 시복시성 추진 교령에 서명하고 있다.
▶대전교구는 교구 설정 직후 발발한 한국전쟁 순교자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은 대전 목동성당에 세워진 순교비.
이승환 기자
발행일2007-06-10 [제2553호]
“순교자 생애·신앙자료 발굴에 관심을”
한국교회 현양 움직임 대부분 계획단계 머물러
왜관수도원 36명 시복시성 추진으로 관심 확산
대전교구 순교자 연구작업 전개…자료집 발간
전문-돌아오는 6월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 57주년이다.포화가 멎은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렸던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교회 또한 한국전쟁을 겪으며 큰 상처를 입었다. 성직.수도자가 납치되거나 죽었고 신앙을 드러내며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은 평신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얼마 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한국전쟁 전후 순교한 36명의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하며 한국전쟁 순교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초기교회 박해기에 못지않은 수많은 신앙인들이 희생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적과 자료 수집 등 종합적인 연구 작업이 이제껏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이다.
본지는 6월 한 달간 한국교회 내에서 진행됐거나 현재 진행 중인 한국전쟁 순교자 현양사업을 돌아보고, 순교자들의 얼이 서린 현장을 찾아 박해 당시의 모습을 되짚어본다.
북한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희생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 대한 범 교회 차원의 연구가 절실하다는 목소리는 줄곧 계속돼 왔다. 이에 부응해 성직자나 수도자를 중심으로 한 자료수집과 연구도 이뤄져 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는 한국전쟁 중 희생된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생 수를 150명으로 집계하고 있으며 주교회의 차원에서 1990년 대한적십자사에 생사확인을 요청한 명단에도 118명이 기록돼 있다. 주교회의가 대희년을 앞두고 1998년과 1999년 교황청에 제출한 ‘한국교회 20세기 순교록’에는 한국전쟁 순교자 182명이 포함돼 있다.
현양사업의 구체적 행보
하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명단은 대부분 성직자와 수도자에 국한돼 있으며 순교자료도 불충분한 상태다. 또 명단만 제출되거나 확인했을 뿐 후속 연구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한국전쟁 순교자에 대한 현양사업은 답보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5월 10일 덕원 수도원 사제 등 ‘20세기 순교자’ 36명의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한 것은 한국전쟁 순교자 현양을 위한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행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는 덕원 수도원 소속 사제 및 수사 26명, 연길수도원 소속 사제 1명, 보이론 수도원 소속 사제 1명, 원산수녀원 수녀 및 헌신자 4명, 덕원 자치수도원구와 함흥교구 소속 사제 4명 등 총 36명이다.
가톨릭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으며 덕행의 실천에 탁월했고, 이 두 사실에 대한 목격자 혹은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경우를 고려해 선정됐다. 왜관 수도원은 시복시성을 위한 법적조치가 이뤄지는 동안 대상자들의 순교사실 확인 및 성덕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고 청원서 제출을 준비하게 된다.
순교자 연구 활기 기대
왜관 수도원의 이번 교령 반포는 한국교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수도원 뿐 아니라 교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제자리걸음을 걷던 한국전쟁 순교자 연구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는 기폭제일 뿐 아니라 순교자 연구를 준비 중인 타 교구에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편 대전교구의 한국전쟁 순교자 연구작업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2008년 교구 설정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교구사 발간에 들어간 대전교구는 특별히 교구 설정 직후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순교자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대전교구사연구소 김정환 신부는 지난 5월 열린 교구 사제연수에서 ‘한국전쟁과 현대의 순교자들’ 자료집을 배포하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자료집에는 한국전쟁 전후 교구 상황과 대응, 순교자 목록 뿐 아니라 공세리·목동·홍성·합덕·서산본당 등 전쟁 당시 박해가 극심했던 각 본당의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특히 자료집에는 최종수(요한), 이항진(토마스), 윤갑수(시몬), 백낙선(사도요한) 등 신앙을 증거 하다 순교한 평신도들의 행적이 현재 생존해 있는 목격자들의 증언과 본당사를 기초로 상세히 기술돼 있다. 대전교구는 교구사연구소의 자료수집과 연구 작업 외에도 매월 한 번씩 교구 주보에 ‘김정환 신부의 6.25 순교자 이야기’를 연재해 한국전쟁 순교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대전교구가 한국전쟁 순교자 연구에 나선 것은 잃어버린 역사였던 한국전쟁 당시 교회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순교자들의 정신을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교구 다음으로 많은 성직자(10명)가 순교했고 금강 이북 본당이 극심한 피해를 입은 대전교구가 이번 자료집 발간을 기초로 보다 적극적인 연구 작업에 나선다면 한국교회의 한국전쟁 순교자 연구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신앙증거 위해 목숨바쳐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의해 자행된 박해와 그로 인해 희생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자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알려진 기록과 증언을 통해 볼 때 매우 분명하다. 대전교구사 연구소 김정환 신부는 자료집 ‘한국전쟁과 현대의 순교자들’에서 ‘교회는 전쟁 초기부터 공산주의자들의 탄압대상이었고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한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각오하면서 이에 대응함으로써 현대의 순교자들이 탄생했다’며 ‘한국전쟁은 그 처참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초기부터 면면히 내려오던 순교정신을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밝히고 있다.
왜관 수도원이 이미 시복시성 추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에서 볼 수 있듯 한국전쟁 순교자들은 초기 박해기 순교자들과 마찬가지로 훗날 제3, 제4의 시복시성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미 한국교회는 수차례에 걸쳐 한국전쟁 순교자 조사 작업을 계획한 바 있다. 경향잡지가 1952년 교회의 수난역사를 편찬해 후세에 귀감을 삼고자 한국전쟁 수난사를 편찬하기 위해 교회 각 본당 신부들에게 조사보고서를 제출해 줄 것을 청했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1969년에는 한국평협이 순교자 현양사업 일환으로 한국전쟁 순교자 조사를 결의하고 주교회의 인준까지 받았지만 역시 무위로 끝나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에도 교회 차원의 한국전쟁 순교자 현양 움직임은 있었지만 대부분 계획 단계에서 머무르는 모습을 보였다.
왜관 수도원과 대전교구의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과 연구 활동으로 인해 한국전쟁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발 맞춰 범 교회가 역량을 모아 순교자들의 생애와 신앙에 대한 자료를 발굴하고 확보하는데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사의 빈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이제 교회 전체가 나설 때다.
사진설명
▶서울 평협은 2005년 6월 23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순교자들을 위해 특별기도회를 가졌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형우 아빠스가 5월 10일 시복시성 추진 교령에 서명하고 있다.
▶대전교구는 교구 설정 직후 발발한 한국전쟁 순교자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은 대전 목동성당에 세워진 순교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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